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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 이야기 12, 맛디아
2020-09-05 11:42:36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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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 이야기 12, 맛디아

(사도행전 1:21-26)

 

박 영찬 목사

할렐루야! 지난 석 달 동안 저는 열두 제자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바로 제자입니까?’라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제자라는 단어는 결코 생소한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와 찬송 가운데 너무나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1990년대 이후부터 서울 사랑의 교회 영향으로 제자훈련을 하지 않은 교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심지어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한 제자훈련도 계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표어나 교회의 이름에도 제자라는 단어를 들어가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라는 단어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이 시대의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예수님을 닮아가서 위하여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성도들을 만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도리어 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인 동시에 제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보면서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따라서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서, 다시 한 번 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무리의 삶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따르는 제자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제자들과 120명의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사모하면서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열두 번째 제자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시편에서 예언한 그대로 돈궤를 맡았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열둘이라는 숫자를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야곱의 아들이 모두 열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파가 열두 지파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에 천국의 문이 열두 개이고, 그 기초석도 열두 개였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열둘이라는 숫자가 자주 나오는 것은 열둘은 삼이나 칠과 함께 완전함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열한 명이나 열세 명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열두 명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빠졌기 때문에 베드로를 중심으로 성도들이 열두 번째 제자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제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자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먼저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베드로는 열두 번째 제자로 세워질 사람은 두 가지 자격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자격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자격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제자의 가장 큰 사명은 사도행전 1:8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증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직접 보고 들고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원어에 보면, 증인은 순교자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이 절대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말씀을 직접 보고 들고 체험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아무나 제자로 세우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제자훈련을 많이 받았다고 할지라도 자격이 되지 않으면 세우지 않습니다. 그 자격은 베드로가 말씀한대로 예수님과 함께 하였고,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들 가운데 2천 년 전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교제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육신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살아계신 예수님을 목격할 수가 있습니다(길 만드시는 주). 따라서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할지라도 이 두 가지의 자격을 갖추었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세우시고, 증인으로 사용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제자들의 마음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23절에 보면, 베드로와 성도들은 두 사람의 후보를 추천하였습니다. 가장 먼저 누가 추천하였습니까? 바사바라고도 하는 요셉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그에게는 별명이 있었는데요, 유스도였습니다. 유스도는 의로운 자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별명을 볼 때,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살려고 힘썼던 인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추천된 것 같습니다(우리교회 공동의회)

 

다음은 맛디아라는 사람에 추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맛디아는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요셉처럼 다른 이름도 없고 별명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요셉이 영광스러운 열둘 번째 제자로 세우질 가능성이 너무나 높지 않습니까? 요셉을 세워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합니까? 26절에 보면, 제비를 뽑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에 보면, 제비를 뽑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론은 두 마리의 염소 가운데 어떤 염소를 속죄 제물로 바칠지를 결정할 때에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지파별로 분배할 때에도 제비를 뽑았습니다. 사울 왕을 세울 때에도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러한 전통에 의하여 제자들도 제비뽑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제비뽑기에서 누가 뽑혔습니까? 가장 먼저 추천되었던 요셉이 아니라, 맛디아가 뽑혔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맛디아를 열두 번째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에서 무엇을 배울 수가 있습니까? 제자의 마음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제자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마음은 나의 뜻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복하려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열린 마음이라고 합니다. 열린 마음의 반대는 닫힌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일을 다 결정해 놓은 다음에 하나님께 도장만 찍어 달라고 요청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닫힌 마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24절과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내가 생각에는 요셉이 더 적합한 것 같사오니 허락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인지를 보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열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맛디아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선택된 맛디아의 이름이 사도행전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한 줄도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귀하게 사용하신 줄 믿습니다. 실제로 교회 전승에 의하면, 그는 에디오피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가룟유다의 빈자리를 잘 감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맛디아를 열두 번째 제자를 세우신 하나님은 지금도 열두 번째 제자를 찾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빈자리가 많기 때문입이다. 물론 높임을 받는 자리 대접을 받는 자리는 빈자리가 없습니다. 서로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입니다. 그런데 낮아져야 하는 자리, 희생해야 하는 자리는 빈자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겨야 하는 자리는 빈자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혹시 주변에 빈자리가 보입니까? 그 자리가 바로 우리가 채워야 하는 열두 번째 제자의 자리입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열두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초라한 인생이었고, 고달픈 인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열두 번째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제자로서의 섬김과 희생이 천국에는 해같이 빛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서 제자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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