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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나부터 기도1" 설교
2020-01-05 15:11:08
동산
조회수   246

20200105 대구동산교회 신년주일 오전예배

나부터 기도, 1”

(예레미야 33:1-3)

 

 

할렐루야! 제가 학창시절에 부모님으로 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씀은 밥 많이 먹으라. 잠 많이 자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었는지 아시겠지요? 공부 많이 해라.였습니다. 그리고 보너스로 하나 더 있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나.’ 물론 그때 당시에 저는 공부와 담을 쌓고 사는 문제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공부를 한다고 했습니다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를 짓는 부모님께서 저를 볼 때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부탁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열심히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부하는 것이 재미가 없고 힘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귀한 시간에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도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기도하라는 명령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설교시간을 통하여 기도에 대한 말씀을 얼마나 자주 듣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생활은 어떠합니까? 기도와 완전히 담을 쌓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쉬지 말고 열심히 기도 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람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기도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이렇게 귀한 시간에 왜 기도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님이 제자들이었습니다. 지난 송구영신예배 때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실 때에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냥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아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말씀입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예수님은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책망하시면서 다시 한 번 더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또 잠을 잤습니다. 심지어 세 번째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또 잠을 잤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시는 시간에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았던 것은 그 이유도 역시 내가 왜 기도를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의 눈앞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엄청난 일들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일들로 인하여서 시험과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올해 우리교회 표어는 나부터 기도로 정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저렇게 대형 현수막 달아 놓고, 주일마다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만족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기도생활을 하였지만, 올해는 특별히 기도하는 한 해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오전예배 때에는 모든 성도들이 들어오실 때에 받은 기도 헌신서를 통하여 한 해 동안 기도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다짐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1층에 기도게시판에 붙이기려고 합니다. 여호수아나무학교 자녀들도 동참할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요람을 제작하지 않는 대신에, 분기별로 기도수첩을 제작해서 나누어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생활을 점검하기도 하고, 받은 말씀을 적기도 하고, 기도제목을 적으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중보기도팀을 조직해서 우리교회에서 기도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유별나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첫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먼저 1절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레미야는 남 유다 왕국이 멸망할 당시에 활동한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당시에 거짓선지자들은 나라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예레미야는 나라가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곧 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을 비롯한 백성들이 그를 얼마나 미워하였겠습니까? 한마디로 백해무익한 존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시위대 뜰에 가두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르짖으라는 것은 단순히 큰 소리로 통성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 부르짖게 됩니까? 절박할 때 부르짖게 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에 심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홍해 앞에 섰을 때에도 부르짖었습니다. 결국 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무런 능력도 없고, 대책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부르짖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 가리켜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영적인 눈이 열려서 우리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일도 하나님께서 하셨구나.’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부르짖는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출애굽 하였을 때에, 그리고 홍해가 갈라졌을 때에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런 부르짖는 기도가 없었다면, 홍해가 아니라 태평양이 갈라졌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기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모든 건물에는 기초가 있듯이, 우리의 기도에도 기초가 있습니다. 그 기초는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하신지를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고 하거나 생선을 달라고 하는 할 경우에 아버지는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때 좋은 것을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할 것 같습니까? 마지못해서 억지로 주는 아버지는 없을 것입니다. 기쁨으로 주지 않습니까? 줄 수만 있다면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예외가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을 드리고 헌금을 바칠 때에도 기뻐하시지만, 특별히 부르짖으면서 기도할 때에 가장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가장 분명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를 구했는데, 하나님께서 구하지 않은 것까지 주시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세 번째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셋째: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동전에는 앞면이 있으면 반드시 뒷면도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르짖음이 있으면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응답은 우리의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뜻대로 이루어지는 응답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 가운데 응답이 없는 기도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2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했는데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데,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의해서 방해를 받는 경우도 없고,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즉 사람의 생각과 예상을 초월하시는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역중 에 부르짖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애굽이 모든 장자를 죽이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홍해 앞에서 부르짖을 때에도, 홍해가 갈라져서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군대가 그 홍해에서 수장될 줄도 몰랐습니다.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불타버린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짓게 하셨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짓게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결국 기도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경험하는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았다면 놀라는 일도 없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교회가 나부터 기도라는 표어를 자기고, 새해 첫 번째 주일부터 기도 헌신서를 드리고, 기도수첩을 매일 작성하면서 기도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기도를 통하여 놀라운 응답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020년 한 해 동안 기도를 통하여 이러한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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