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설교와 찬양    >    주일설교

주일설교

나부터 기도 2 설교
2020-01-12 15:12:38
동산
조회수   55

20200112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나부터 기도. 2”

(야고보서 6:16-18)

 

 

할렐루야! 오늘 교회 주방에는 여러 개의 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칼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기가 있는 칼입니다. 주방봉사자들이 요리를 할 때마다 그 칼 어디에 있지하고 자주 찾는 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일 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 인기가 없는 칼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방에서 어떤 칼이 인기가 있을 것 같습니까? 단순히 디자인이 예쁘고, 독일산으로서 쌍둥이 마크가 찍혀 있다고 해서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볼품이 없다고 할지라도, 잘 드는 칼이 인기가 있습니다. 반면에 녹이 슬고 잘 들지 않는 칼은 인기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주방에 있는 칼이 다 똑같은 칼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도 다 똑같은 기도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는 능력이 있는 기도가 있는 반면에 능력이 없는 기도도 있습니다.

 

여기서 능력이 있는 기도란 아무리 작은 소리로 기도하여도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시는 기도입니다. 반면에 능력이 없는 기도란 아무리 큰 소리로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지 않고 응답해 주시지도 않는 기도를 말합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홍해를 갈라지게 하였던 모세의 기도와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였던 여호수아의 기도는 능력 있는 기도였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다윗의 기도와 앗수르 군대를 물리쳤던 히스기야의 기도도 능력 있는 기도였습니다. 하지만 시편 66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듣지 아니하시는 기도도 있고, 심지어 잠언 2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는 기도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는 그의 책에서,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기도가 그런 취급을 당한다면 얼마나 충격적이고 허탈한 일입니까? 어쩌면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이 드리는 수많은 기도가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는 기도, 그래서 응답해 주시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누구의 기도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희 어머니는 대구 근교에 있는 기도원 원장 권사님의 기도가 제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집 안에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원장 권사님을 찾아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교회 안에서 담임목사의 기도가 제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마다 저의 기도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 드립니다. 그분들 중에는 큰 수술을 앞두고 마음이 불안한 분도 있고, 자녀가 중요한 시험을 앞둔 분도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신년특별새벽기도회가 있었는데요, 매일 새벽마다 여호수아나무학교 자녀들에게 안수기도를 하였습니다. 첫날에는 영아부 부모들이 어린 아기들을 품에 안고 나와서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담임목사의 기도는 능력이 있다고 믿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에게 목양사역에 필요한 은혜와 은사와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교회 안에서 기도의 능력은 담임목사 한 사람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습니까? 목사의 간구가 아니라 의인의 간구라고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의인이란 사도바울이 로마서 3:10에서 말씀하는 그 의인이 아닙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을 때의 의인은 예수님처럼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의인은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원문에도 보면, 야고보 사도는 의인이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의인은 어느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처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하면 놀라운 기도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 대표적인 인물로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엘리야는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갈멜산 사건의 영웅이었습니다. 어느 날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합계 850명의 이방선지자들과 기도대결을 벌였습니다.

 

그때에 이방선지자들이 하루 종일 기도를 하여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지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서 제물과 더불어 도랑의 물까지 다 핥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참신이라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명한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에도 죽음을 보지 않고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에 모세와 더불어 예수님과 말씀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엘리야 선지자는 우리와 수준이 다른 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7절을 보시면 엘리야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a man just like us’로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갈멜산 사건으로 인하여 노발대발한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에 엘리야는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다.’라고 담대하게 나아갔던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 두려워서 도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도망했습니까? 북쪽 이스라엘에서 출발해서 남쪽 끝인 브엘세바까지 도망을 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광야 한 가운에서 나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이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마시지 않으면 목이 마르고, 어려움에 처하면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그의 기도에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먼저 그는 비가 내리지 않도록 기도를 하자, 무려 36개월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지역에 비가 몇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만, 엘리야의 기도로 무려 36개월 동안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이슬조차도 내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기도의 능력입니까?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성정이 같았던 엘리야가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큰 능력이 나타난 비결은 무엇일까요? 다시 한 번 더 17절을 보면, 그가 간절히 기도하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간이 절이도록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는 비가 다시 오기를 사모하면서 기도하는데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우리들처럼 의지가에 편안히 앉아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땅에 꿇어 엎드려서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딱 한 번 기도하였는데, 큰 비가 쏟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려 여섯 번까지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까지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마침내 큰 비가 쏟아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엘리야의 기도를 보면서, 역시 기도능력은 간절히 기도할 때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무슨 기도 제목이든지 간절히 기도하기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적당하게 대충대충 기도하는 것보다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간절히 기도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만, 나의 욕심과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한다면,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소나무가 아니라 거대한 느티나무를 뽑으면서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이루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은 엘리야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숭배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비가 오게 해달라는 것은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결국 열심히 기도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주방에 있는 칼이 다 똑같은 칼이 아닌 것처럼, 우리도 기도도 다 똑같은 기도가 아닙니다. 능력이 있는 기도가 있는 반면에 능력이 없는 기도가 있습니다. 과연 누구의 기도가 능력이 있습니까? 우리와 성정이 같았던 엘리야처럼, 나의 나라와 나의 뜻을 위하여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구하는 기도가 능력이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물론 시간이나 자세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물질을 구하되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구하시기 바랍니다. 건강을 구하되 역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위하여 구하되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