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200202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나부터 기도. 5”
(누가복음 11:5-13)
할렐루야!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 예수님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제자가 이런 요청을 한 이유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도를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까지 열심히 기도했습니다만, 주방에 있는 칼이 다 똑같은 칼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다 똑같은 기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기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기도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능력이 나타났고, 귀신들린 아이가 고침을 받는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도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러한 요청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각자 알아서 자유롭게 기도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적당하게 대충 기도하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호흡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합시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구하지 않아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복을 내려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식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기도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의 놀랍고 풍성한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한 제자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기도에 대하여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 번째로 누구에게 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첫째: 누구에게 구해야 하는가). 아마 우리들 가운데 기도를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분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유치부 아이들조차도‘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저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면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벌벌 떨면서 기도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2절에 보면,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까?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13절에도 보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도 보면, ‘너는 기도할 때에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희 세대만 해도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호칭이 언제나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테르’이고 아람어로는 ‘아바’인데요,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아빠라는 뜻입니다. 아빠는 어린아이가 자신을 너무나 사랑스러워하고 귀하게 여기는 아버지를 다정하게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그럴만한 공로나 자격이 있기 때문이 절대로 아닙니다. 로마서 3:23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 아빠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바로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기쁨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특히 이 땅의 모든 아버지가 그러한 것처럼, 하나님 우리 아버지도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데, 성령님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무엇을 먼저 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둘째: 무엇을 먼저 구해야 하는가). 우리가 라면 하나를 끓일 때에도 재료를 넣는 순서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넣어야 할 물을 가장 나중에 넣으면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상보훈을 보면, 이방인들은 주로 무엇을 먼저 구합니까?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를 염려하면서 이런 것들을 먼저 구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기도는 아무리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으로 끝마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자기의 이름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목적이 오직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먼저 구하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결국 주기도문은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주님을 위한 기도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뜻대로 기도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솔로몬 왕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네게 무엇을 줄꼬’라고 물으셨을 때에 자신을 위하여 부나 장수나 원수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위하여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리할 때 솔로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세 번째는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셋째: 어떻게 구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에게 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탕자의 비유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처럼 충격적이거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밤중에 친구 집을 찾아갑니다. 그 시간이면 친구는 벌써 문을 잠그고 가족들과 함께 잠자리에 누워 있는 줄 알면서도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떡 세 덩이를 꾸어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또 다른 친구가 뜨거운 태양을 피하여 오후 늦게 여행을 떠났는데요, 한 밤중에 그의 집에 도착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는 친구에게 대접할 떡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불 떡을 빌리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떡을 빌리러 온 사람이 어떻게 자세로 떡을 구하였다고 했습니까? 아마 우리 같으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서 요청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강청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강청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오늘 본문에서만 사용된 단어인데요, ‘부끄러움 없이’ ‘뻔뻔스럽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집요하게’로 번역하였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친구의 집을 찾아갔을 때에 한두 번 정도 문을 두드리고 돌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짜증을 내면서 ‘누군교?’하고 대답을 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떡 세 덩이를 빌려 달라고 할 때도 미안한 마음이 아니라 마치 맡겨 놓은 것처럼 당당하게 요청하였습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집주인은 어떻게 반응한다고 했습니까? 한밤중에 자다가 일어나서 불을 켜고 떡을 빌려주는 것이 너무나 귀찮고 힘든 일이지만 절대로 노라고 거절을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친한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강청함 때문입니다. 결국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도를 할 때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사탄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기도를 멈추게 하기 위하여 두 가지 무기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낙심이고, 또 하나는 의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으면 ‘기도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 하고 우리를 낙심케 만듭니다.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하여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기도를 중단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를 향한 사랑과 능력은 변함이 없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는 것은 더 좋은 때에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인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받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강청하여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위하여 강청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의인 50명에서 시작하여 10명까지 내려가면서 집요하게 기도하였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거절하셨을 때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하면서 강청하였습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한 제자에게 기도에 대하여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누구에게 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무엇을 먼저 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 번째는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기도할 때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빠에게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강청함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내일부터 부흥회가 시작됩니다. 다섯 번의 시간마다 참석하시어서 간청함으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처럼 능력 있는 기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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