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200209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나부터 기도. 6”
(빌립보서 4:6-7)
할렐루야! 올해 우리교회 표어는 나부터 기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송구영신예배 설교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주간에 있었던 부흥회 셋째 날 새벽집회 때에도 기도에 대한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이 그 마지막 시간인데요,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처럼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지 않은 성도님들 가운데 기도에 대하여 몇 가지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의문은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에서 하신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32에 보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분이신 동시에 우리를 공중에 나는 새나 들의 백합화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이 땅의 아버지는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끔씩은 모르실 때가 있습니다만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벌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분이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기도 대신에 ‘아시지요, 아시지요.’라고 노래 한 소절만 한마디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기도제목을 하나씩 붙들고 기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두 번째 의문은 성령님의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로마서 8:26에 보면,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령님을 보내어 주신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함입니다.
특히 우리가 아무리 어설프게 기도하여도,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든든한 기도의 도우미가 계시는데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모르겠다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의문은 사도바울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모릅니다. 예전처럼 손 편지를 쓸 시간이 없어서 그냥 폰으로 간단한 문자를 보내는데요, 생일선물이라는 말을 쓰기도 바빠서 생선이라고 줄여 쓰고, ‘맛있는 점심 드세요.’라는 말을 쓰기도 바빠서 ‘맛점 하세요.’라고 줄여 씁니다. 젊은이들이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세요. 손가락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요, 여기서 쉬지 말고는 영어로 continually로 계속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솔직히 비타민 알약을 하루에 한 번만 먹듯이, 기도도 하루에 딱 한 번, 그것도 1분만 하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바쁜 일과를 뻔히 다 아시면서도 왜 쉬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혹시 이러한 세 가지의 의문이 여러분들에게도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에게 이러한 의문들이 있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많이 기도를 했지만, 죄송합니다만 기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즉 기도를 잘못 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의외로 많은 성도들은 기도를 119긴급전화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알라딘의 마술 램프나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마술램프나 도깨비 방망이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입니다. 기도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연히 열심히 기도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에는 기도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기독교에 있어서 기도의 목적은 다른 종교처럼 문제해결이나 소원 성취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도 보면, 우리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참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사귐(자막)입니다. 즉 하나님과 만나서 교제하고 사귀기 위하여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교제를 하면 그곳에는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납니다. 평안과 안식이 있습니다. 나눔과 섬김이 있습니다. 위로와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가는 줄 모릅니다. 그리고 다음 만남이 기다려집니다.
하나님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만나서 교제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여집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참된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에 기름진 복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부어주십니다.
이러한 만남이 무엇을 통하여 이루어집니까?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에 식사하실 겨를도 없으셨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은 새벽 아직 밝기도 전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6장에도 보면, 하루 종일 모든 사역을 마치신 후에는 무리와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잡히시던 날 밤에는 겟세마네동산에서 밤새도록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기도의 삶을 사셨던 이유는 우리처럼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몸이 아팠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향하여 친히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특히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기도하지 않고 자는 제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결국 십자가를 눈앞에 둔 예수님이 원하셨던 것은 기도를 통하여 제자들과 사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시간이 짧은 기도도 물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만 기도는 오래하면 할수록 더 기뻐하십니다.
혹시 슬로우 푸드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우리는 컵라면이나 햄버거처럼 몇 분 만에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페스트 푸드라고 합니다. 그런데 곰탕과 같은 음식은 슬로우 푸드라고 합니다. 요리하는 시간이 오래면 오랠수록 깊고 진한 맛이 납니다. 기도도 페스트 푸드가 아니라 슬로우 푸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적어도 얼마나 동안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까? 최소한 한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성도님들에게 한 가지 기도운동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운동의 이름은 ‘한 시간 기도운동’(자막)입니다. 최근에 나온 유기성 목사님의 책 제목과 같은데요, 아마 성도님들 가운데 대부분은 한 시간 기도운동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할 것입니다. 물론 하루에 한 시간이 아니라 3시간, 5시간도 기도하시는 분이 있습니다만, 하루에 오 분도 기도하기 힘이 드는데 무려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한 시간 동안 기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나 기도의 어머니인 권사님들만 가능한 기도운동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한 시간 기도운동을 시작한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한 시간 동안 기도하느라 지치고 피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기도 때문에 새로운 능력과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한 시간 기도를 하기 위하여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첫째: 찬양). 운동선수들이 시합 전에 먼저 워밍업을 하듯이, 기도도 워밍업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워밍업은 찬양입니다. 우리가 기도자리에 앉자마다 곧바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잠자는 영혼을 깨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게 하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둘째: 묵상).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를 보내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면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하나님만 보이게 됩니다. 세 번째는 주기도문으로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셋째: 주기도문). 우리가 한 시간 동안 다른 기도를 하지 않고 주기도문만 암송하여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네 번째는 감사와 자백입니다(넷째: 감사와 자백). 지금까지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하시고, 우리가 지은 죄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중보와 간구입니다(다섯째: 중보와 간구). 중보는 나의 주변에 있는 이웃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간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필요를 채워 달라는 기도입니다. 만약에 이렇게 적어도 한 시간 동안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우리의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정과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은 기도에 대한 마지막 설교 시간으로서 기도가 무엇인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기도는 119전화도 아니고 요술램프도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나서 교제할 때에 놀라운 유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최소한 한 시간 동안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솔직히 하루에 3분도 기도하지 못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루에 한 시간 기도운동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새벽시간이나 아니면 일과 중에 기도시간을 억지로라도 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풍성한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따라서 나부터 한 시간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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