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200308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 영상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4”
(사도행전 16:19-34)
박 영찬 목사
할렐루야! 오늘도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도 우리가 사도바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닮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을 가리켜서, ‘약속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기록된 39권의 책을 구약이라고 하고,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그 이후에 기록된 27권의 책을 신약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약속은 무엇일까요? 그 약속은 바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약속입니까? 이러한 구원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그냥 흘러가는 대로 지켜만 보신 것이 아니라, 친히 간섭하시고 섭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어제 아침 제가 ‘오늘의 만나’를 통하여 말씀드린 것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단수한 일을 통하여서 역사하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때로는 기적을 통하여 역사하시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얼마나 많은 기적들이 나옵니까? 아브라함이 백세에 이삭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기적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사이로 건넌 것도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가장 큰 기적은 예수님께서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인 줄 믿습니다.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기적의 내용을 다 빼버린다면, 우리가 성경을 일독하는데 단 1분도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의 기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6절에 보면,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고 했습니다. 지금 사도바울과 실라는 빌립보라는 성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났을 때에 원래는 아시아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그의 계획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밤의 환상을 통하여 마게도냐 지방으로 그의 걸음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들어간 성이 바로 빌립보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수입이 끊긴 여종의 주인이 얼마나 열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그 주인의 고소로 사도바울과 실라는 졸지에 많은 매를 맞은 다음에 깊은 감옥에 갇히게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잠이 든 한 밤 중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요즘도 큰 지진이 일어나서 높은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어졌다는 뉴스를 가끔씩 듣습니다만, 지진으로 인하여 감옥 문이 자동문처럼 다 열리고, 죄수들의 매인 것들이 다 풀려졌다는 뉴스를 들은 적은 없을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 나온 사건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빌립보 성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지진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나 그들을 지키는 간수들이 볼 때에, 큰 지진을 통한 하나님의 기적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기적이 일어나기 직전에 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어떤 기적입니까?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기 적전에 바울과 실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바울처럼 대단한 믿음과 영성이 있는 사람이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 정도 되면 항상 성령 충만, 항상 은혜 충만, 항상 능력 충만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로마서 7장에 보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고 하면서 자신의 연약함 모습을 바라보면서 탄식을 하였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그러했듯이, 바울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육체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보면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하였습니까? 먼저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사실 빌립보로 온 것은 바울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복음을 전하고 귀신들인 여종도 고쳐주었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하여 예비하신 숙소는 안락한 호텔이 아니라 차디찬 감옥이었습니다. 그리고 22절에 보면, 상관들이 아무런 죄도 없는 바울의 옷을 찢어 벗겼다고 했습니다.
23절에 보면, 많이 쳤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많이 쳤다는 것은 태장으로 서른아홉 대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법률에 의하면 태장으로 사십 대를 치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십 대를 치면 죽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바울은 깊은 감옥에 갇혔는데 그의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라고 했습니다. 심적으로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겠습니까? 그리고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기도하였다고 했는데요, 그냥 기도가 아니라 원문에 보면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을 하였다고 했는데, 마지못해서 억지로 흥얼거린 것이 찬양이 아니라 모든 죄수들이 들을 정도로 큰 소리로 찬양하면서 하나님을 높였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모습입니까? 따라서 그날 밤에 바울과 함께 감옥에 있었던 사람들은 큰 지진을 통하여 놀랐겠지만, 오히려 바울과 실라가 감사 기도를 드리고, 찬송하는 모습을 통하여 더욱 더 놀랐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실라가 이처럼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비결을 바울이 쓴 로마서 8:28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지금 사도바울은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관중석에 앉아서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섭리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바울은 믿고 있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자신의 이성으로는 아무리 생각하고 연구를 해보아도 하나님께 왜 나를 빌립보로 보내셨는지, 그리고 왜 죄 없는 나를 감옥에 갇히게 하셨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머리털까지 다 세실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왜 바울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사실은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었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높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욥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욥기 23:10에 보면,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욥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고난을 통하여 순금같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의 크기에 따라서 우리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큰 고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 능히 이길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조그마한 고난이 와도 우리는 힘없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을 감옥에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입니까? 27절 이하에 보면,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빌립보 전체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울을 지키던 간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지진이 났을 때에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자결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듣게 됩니다. 즉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무엇이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입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복음을 간수와 간수의 온 가족이 듣고서 결국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도바울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의 고난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가뭄으로 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이루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인하여 무려 삼 주째 교회에서 공 예배를 드리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지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번 일을 통하여 놀라운 뜻을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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