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200329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 영상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바울 7”
(에베소서 6:10-17)
할렐루야! 오늘도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바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늘도 우리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것은 지난 2월 18일이었습니다. 그런데 40여일이 지난 지금 그 숫자는 무려 6500명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병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들의 수고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은 평소와 달리 거추장스러운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보는 때문에 너무나 힘이 든다고 합니다.
실제로 대구가톨릭 병원에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상시 근무보다 5배는 더 힘이 든다고 했습니다. 특히 레벨 D급 방호복을 입고 있으면 온 몸이 땀에 젖고, 숨쉬기가 힘이 들고, 목도 굉장히 마른다고 합니다. 고글에도 습기가 차서 앞이 보이지도 않고, 양압 보조기를 허리에 차고 있기 때문에 허리도 상당히 아프다고 합니다.
이처럼 의료진들이 방호복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지만, 절대로 환자들 앞에서 방호복을 벗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방호복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갑옷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에게 있어서 적을 공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천하무적의 군인이라고 할지라도 갑옷을 귀찮게 여기는 군인은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입니다. 그는 키가 3미터나 될 정도로 거인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는 당대에 최고의 군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가 약 57키로나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소년 다윗이 그 어떤 갑옷도 입지 않고 막대기 하나만 달랑 들고 나아왔을 때에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을 지키는데 필요한 방호복이나 갑옷은 병원 의료진이나 군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1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로마 옥에 갇혀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옥중서신을 보내는 가운데, 편지 마지막 결론에 부분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신갑주란 단순히 자신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갑옷 뿐만 아니라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전신갑주로 무장하여야 합니까? 그 이유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함이라고 사도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마귀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 삶의 참 주인 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가 오직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도록 여러 가지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이것이 간계입니다.
예를 들면, 하와에게는 선악과를 따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인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고린도후서 4:14에 보면, 사탄은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처럼, 사탄의 간계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대적 마귀가 우리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에 근신하라. 깨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어떻게 무장해야 합니까? 사도바울은 당시 로마 군인들이 무장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모두 여섯 가지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전신갑주는 진리의 허리띠입니다(첫째: 진리의 허리 띠).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에 사람들이 입었던 옷은 마치 우리교회 찬양대가 입고 있는 가운과 비슷하였습니다. 만약에 그런 옷을 입고 축구를 하거나 달리기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특히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몸을 민첩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허리 띠였습니다. 요즘 남자들은 가죽으로 된 허리띠를 많이 하는데요, 사도바울은 우리 성도들이 영적 전쟁터에 나갈 때에 무엇으로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까?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시대와 상황에 바뀌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이치를 가리켜서 진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이치 가운데 이 세상 끝 날까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이치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변하는 사람의 말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전신갑주는 의의 호심경입니다(둘째: 의의 호심경). 사람의 장기 가운데 영양분과 산소를 가득 실은 혈액을 온 몸 구석구석에 공급하는 중요한 기관이 있습니다. 그 기관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그 기관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바로 심장입니다. 따라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호심경을 착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우리의 영적인 심장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는 호심경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란 우리들이 착한 일을 많이 함으로 쌓아올린 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들의 의가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습니까? 사탄이 볼 때 조롱거리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완전한 의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님의 완전한 의가 우리의 의가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의를 의지할 때 능히 이길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세 번째 전신갑주는 평안의 복음의 신입니다(셋째: 평안의 복음의 신). 요즘 우리가 신는 구두나 운동화는 얼마나 편하고 가벼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군인들의 전투화는 정말 불편하고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적진을 향하여 돌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발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전쟁에서 발을 보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5절에 보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사도바울은 말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믿으면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참된 평안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한복음 5:24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공격하고 참소하여도, 이 복음을 붙들면 평안이 넘쳐 날 줄 믿습니다.
네 번째 전신갑주는 믿음의 방패입니다(넷째: 믿음의 방패). 16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로마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직사각형의 방패를 들었습니다. 높이가 120센티이고, 폭은 70센티 정도 되었습니다. 따라서 적군이 아무리 불화살을 쏘고 창을 던진다고 할지라도 방패 뒤에 숨어 있으면 안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 전쟁에서는 불화살을 볼 수 없습니다만, 영적인 전쟁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향하여 불화살을 쏩니다. 그 불화살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의심입니다. 먼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에 대하여 의심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의심하게 합니다. 특히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의심하게 합니다.
이러한 의심의 불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는 오직 믿음의 방패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믿음이 필요합니까? 로마서 8:38이하에 보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고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전신갑주는 구원의 투구입니다(다섯째: 구원의 투구).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투구나 철모를 씁니다. 그런데 영적인 전쟁에 있어서 투구는 구원의 확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사탄이 가장 많이 공격하는 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래서 구원파나 신천지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2:8에서,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난 것임을 기억할 때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전신갑주는 성령의 검입니다(여섯 번째: 성령의 검). 지금까지 제가 소개한 전신갑주는 모두 다 방어용이었습니다만, 여섯 번째 전신갑주는 공격용 칼입니다. 사도바울은 무엇이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칼이라고 했습니까?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에게 세 번이나 시험을 받으실 때에 세 번 다 무엇으로 이기셨습니까?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의료진에게 방호복이 필수인 것처럼, 군인에게 전신갑주도 필수입니다. 특히 사탄과 영적인 전쟁 중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절대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무엇입니까?
첫째,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둘째, 의의 호심경입니다. 셋째, 평안의 복음의 신입니다. 넷째, 믿음의 방패입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입니다. 여섯째는 성령의 검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찬양: 351장(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20200329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 영상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바울 7”
(에베소서 6:10-17)
박 영찬 목사
할렐루야! 오늘도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바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늘도 우리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것은 지난 2월 18일이었습니다. 그런데 40여일이 지난 지금 그 숫자는 무려 6500명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병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들의 수고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은 평소와 달리 거추장스러운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보는 때문에 너무나 힘이 든다고 합니다.
실제로 대구가톨릭 병원에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상시 근무보다 5배는 더 힘이 든다고 했습니다. 특히 레벨 D급 방호복을 입고 있으면 온 몸이 땀에 젖고, 숨쉬기가 힘이 들고, 목도 굉장히 마른다고 합니다. 고글에도 습기가 차서 앞이 보이지도 않고, 양압 보조기를 허리에 차고 있기 때문에 허리도 상당히 아프다고 합니다.
이처럼 의료진들이 방호복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지만, 절대로 환자들 앞에서 방호복을 벗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방호복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갑옷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에게 있어서 적을 공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천하무적의 군인이라고 할지라도 갑옷을 귀찮게 여기는 군인은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입니다. 그는 키가 3미터나 될 정도로 거인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는 당대에 최고의 군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가 약 57키로나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소년 다윗이 그 어떤 갑옷도 입지 않고 막대기 하나만 달랑 들고 나아왔을 때에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을 지키는데 필요한 방호복이나 갑옷은 병원 의료진이나 군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1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로마 옥에 갇혀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옥중서신을 보내는 가운데, 편지 마지막 결론에 부분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신갑주란 단순히 자신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갑옷 뿐만 아니라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전신갑주로 무장하여야 합니까? 그 이유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함이라고 사도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마귀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 삶의 참 주인 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가 오직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도록 여러 가지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이것이 간계입니다.
예를 들면, 하와에게는 선악과를 따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인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고린도후서 4:14에 보면, 사탄은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처럼, 사탄의 간계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대적 마귀가 우리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에 근신하라. 깨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어떻게 무장해야 합니까? 사도바울은 당시 로마 군인들이 무장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모두 여섯 가지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전신갑주는 진리의 허리띠입니다(첫째: 진리의 허리 띠).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에 사람들이 입었던 옷은 마치 우리교회 찬양대가 입고 있는 가운과 비슷하였습니다. 만약에 그런 옷을 입고 축구를 하거나 달리기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특히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몸을 민첩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허리 띠였습니다. 요즘 남자들은 가죽으로 된 허리띠를 많이 하는데요, 사도바울은 우리 성도들이 영적 전쟁터에 나갈 때에 무엇으로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까?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시대와 상황에 바뀌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이치를 가리켜서 진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이치 가운데 이 세상 끝 날까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이치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변하는 사람의 말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전신갑주는 의의 호심경입니다(둘째: 의의 호심경). 사람의 장기 가운데 영양분과 산소를 가득 실은 혈액을 온 몸 구석구석에 공급하는 중요한 기관이 있습니다. 그 기관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그 기관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바로 심장입니다. 따라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호심경을 착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우리의 영적인 심장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는 호심경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란 우리들이 착한 일을 많이 함으로 쌓아올린 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들의 의가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습니까? 사탄이 볼 때 조롱거리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완전한 의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님의 완전한 의가 우리의 의가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의를 의지할 때 능히 이길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세 번째 전신갑주는 평안의 복음의 신입니다(셋째: 평안의 복음의 신). 요즘 우리가 신는 구두나 운동화는 얼마나 편하고 가벼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군인들의 전투화는 정말 불편하고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적진을 향하여 돌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발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전쟁에서 발을 보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5절에 보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사도바울은 말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믿으면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참된 평안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한복음 5:24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공격하고 참소하여도, 이 복음을 붙들면 평안이 넘쳐 날 줄 믿습니다.
네 번째 전신갑주는 믿음의 방패입니다(넷째: 믿음의 방패). 16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로마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직사각형의 방패를 들었습니다. 높이가 120센티이고, 폭은 70센티 정도 되었습니다. 따라서 적군이 아무리 불화살을 쏘고 창을 던진다고 할지라도 방패 뒤에 숨어 있으면 안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 전쟁에서는 불화살을 볼 수 없습니다만, 영적인 전쟁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향하여 불화살을 쏩니다. 그 불화살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의심입니다. 먼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에 대하여 의심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의심하게 합니다. 특히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의심하게 합니다.
이러한 의심의 불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는 오직 믿음의 방패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믿음이 필요합니까? 로마서 8:38이하에 보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고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전신갑주는 구원의 투구입니다(다섯째: 구원의 투구).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투구나 철모를 씁니다. 그런데 영적인 전쟁에 있어서 투구는 구원의 확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사탄이 가장 많이 공격하는 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래서 구원파나 신천지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2:8에서,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난 것임을 기억할 때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전신갑주는 성령의 검입니다(여섯 번째: 성령의 검). 지금까지 제가 소개한 전신갑주는 모두 다 방어용이었습니다만, 여섯 번째 전신갑주는 공격용 칼입니다. 사도바울은 무엇이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칼이라고 했습니까?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에게 세 번이나 시험을 받으실 때에 세 번 다 무엇으로 이기셨습니까?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의료진에게 방호복이 필수인 것처럼, 군인에게 전신갑주도 필수입니다. 특히 사탄과 영적인 전쟁 중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절대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무엇입니까?
첫째,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둘째, 의의 호심경입니다. 셋째, 평안의 복음의 신입니다. 넷째, 믿음의 방패입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입니다. 여섯째는 성령의 검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찬양: 351장(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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