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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 3
2020-05-03 13:31:30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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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3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 3”

 

 

할렐루야! 오늘도 저는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신구약 성경 66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책은 사도바울이 쓴 로마서입니다.

 

이렇게 귀한 로마서를 펼쳐 보면, 1장과 2, 그리고 3장에 세 명의 탕자가 나옵니다. 첫 번째 탕자는 열심히 쾌락을 즐긴다고 해서 열락이고, 두 번째 탕자는 열심히 남을 판단한다고 해서 열판이입니다. 세 번째 탕자는 열심히 의로운 일을 행한다고 해서 열의입니다. 원래 이 세 명의 탕자들은 한 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란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서 강가에 내려갔다고 그만 깊은 강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떠 내려 가다가 아주 낯선 땅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세 명의 탕자들은 각기 다른 인생철학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먼저 첫 번째 탕자인 열락이의 인생철학은 인생을 즐겨라.’였습니다. 그는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쾌락을 즐겼습니다.

 

이러한 열락이를 향하여 사도바울은 그 마음에 누구를 두기를 싫어하였다고 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나의 삶의 참된 주인 되신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였습니다. 대신에 세상의 헛되고 헛된 것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따라서 삶의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신의 생각이 기준이 되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탕자인 열판이의 인생철학은 무엇이었습니까? ‘난 괜찮아(I am Okey).’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으면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열판이는 아버지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세상들과 함께 쾌락을 즐기는 열락이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순간부터였습니다. 왜냐하면 열락이의 죄와 비교하면 자신의 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열판이를 향하여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씀했습니까?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아느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죄의 무게와 비교하면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세리와 창녀들을 비판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회칠한 무덤이라고 저주를 하셨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탕자인 열의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그의 인생철학은 난 할 수 있어(I Can Do It).’였습니다. 우리들 주변을 살펴보면, 마치 나폴레옹처럼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을 자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열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서 낯선 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형제들 중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수영을 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과 실력으로 얼마든지 아버지가 계신 곳까지 거슬러 올라 갈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다음 날부터 강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데요, 조금씩 상류로 올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두 형제의 모습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수영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열의를 볼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찾아온 부자 청년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9:16절에 보면, 그는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의로운 일을 행하면 충분히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는 어려서 부터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들을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님들 중에서도 이 부자청년처럼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열락이처럼 세상적인 쾌락을 즐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열판이처럼 남을 비판하거나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관심은 하나입니다. 열심히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보다도 더 열심히 예배를 드립니다. 더 열심히 헌금하고 기도를 합니다. 더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합니다. 우리가 볼 때 얼마나 대단한 모습입니까? 이런 분들은 교회에서 많은 존경과 박수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향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그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율법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산상보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살인이라고 했습니까? 도프토예프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맏아들처럼, 비록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형제에게 노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음욕을 품고 여인을 바라보는 것을 간음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높이뛰기를 잘하는 선수라고 할지라도 달까지는 뛸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열심히 율법을 지켜도 하나님의 의로운 기준에는 도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로마서에 나오는 세 명의 탕자는 모두 다 소망이 없는 자들임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망의 상황에서 사도바울은 놀라운 소식(Good News)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친히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길이 열렸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렸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한 번도 강에 내려가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공의의 아버지는 탕자들의 모든 죄를 예수님 한 사람에게 다 담당시키셨던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탕자들이 돌아올 수 있는 쉽고 간단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2:15에 보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즐거워하는 자들보다는 우는 자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사태를 통하여 대구에는 영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우는 자들이 많습니다. 물론 확진자는 급격히 줄었지만, 절망과 불안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가운데, 동산희망나눔운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사실 요즘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올해 계획하였던 엘리베이트 공사를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돌보는 것이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잠언 19장에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들어오실 때 받으신 봉투를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안내문과 함께 희망나눔이라고 적힌 배지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먼저 저처럼 항상 가슴에 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배지를 볼 때마다 우리의 사명이 희망나눔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이웃에게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는 사랑의 선물을 나누는 일에 물질로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모두 다 돈을 받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를 때 거꾸로 우리의 물질을 나누면 그 가치는 빛이 날 것입니다.

 

참가비는 만원입니다(만원의 행복). 다음 주일까지 봉투에 넣어서 헌금함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헌금 주머니를 따로 돌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5월 셋째 주일부터 6월 첫 번째 주일까지 매주일 사랑의 선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웃에게 전달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오병이어를 사용하시듯이, 우리의 작은 사랑과 섬김을 통하여 대구를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심하게 박해 받던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요즘처럼 전염병이 퍼져서 거리에 시체들이 방치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시체를 수습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카타콤에 숨어 있던 성도들은 새벽에 몰래나가서 시체를 치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교회는 로마시민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교회도 동산희망나눔운동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귀한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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