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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7
2020-05-31 12:47:40
동산
조회수   287

20200531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 7”

(로마서 8:26-30 )

 

 

할렐루야! 신구약 성경 66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은 사도바울이 쓴 로마서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는 로마서를 중심으로 “Amazing Grace(놀라운 은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오늘이 그 마지막 시간데요, 살인마 김대두와 청년 어거스틴이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의 영적인 모습이 날마다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지난 58일에 있었던 우리나라 프로축구 개막전에서 첫 골을 넣은 선수가 그 기쁨을 이렇게 수어로 표현하였습니다. 그 수어의 뜻이 무엇인지 다들 알고 계시지요? 존경합니다.’인데요, 이번 코로나19의 최전선에 서 있는 대한민국 모든 의료진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전하려는 골 세리머니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토록 힘들고 답답하였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끝내고 가족들이 모여서 외식을 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것을 참으로 귀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렵게 회복된 일상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저주 아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축복) 아래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이 누구의 덕분일 것 같습니까? 오늘 본문인 로마서 8장에 보면, 이 모든 일들이 다 성령님 덕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뜨거움이나 감동 또는 능력을 성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과 더불어 동등한 영광과 동등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성령님 덕분에 우리는 세 가지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은혜입니다(첫째: 영접하는 은혜). 요한복음 1:12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Savior)로 인정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나를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와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분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을 세계 사대 성인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분으로 인정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세상에 한 분 밖에 없는 나의 구세주로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그림자를 본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정녀에게서 나신 것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세상 끝 날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것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우리가 어릴 적부터 계속해서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동안에 머리에 세뇌가 되었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요한복음 16:24에 보면,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 유명한 학자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였다면, 우리들 중에 예수님을 영접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친히 증거 하였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게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사도바울은 말씀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성령님께서 주신 은혜는 보게 하시는 은혜입니다(둘째: 보게 하시는 은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당연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부모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부부의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런 병에 걸리면 어떤 증세가 나타납니까? 먼저 감사와 기쁨이 사라집니다. 대신에 원망과 불평이 넘쳐 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찮게 여깁니다. 예배를 하찮게 여깁니다. 말씀과 기도를 하찮게 여깁니다. 교제와 봉사를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하찮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당연병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게 자랑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자랑할 것이 한두가지는 있습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조차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전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님께서 우리를 말씀의 거울 앞으로 인도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우리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이사심방을 가면, 그 가정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할 때에 거울의 축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거울의 축복이란 볼 수 있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거울 통하여 육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영적인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결국 누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것도 성령님께서 거울을 통하여 보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에서, 사도바울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로다.’라고 고백한 것도 역시 성령님께서 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령님의 역사 없으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자신이 죄인이라도 시인하지를 않습니다.

 

세 번째로 성령님께서 주신 은혜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은혜입니다(셋째: 생각나게 하는 은혜). 지난 주일에 요셉의 형들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만 한 순간에 두려움과 불안에 빠졌습니다. 무엇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까? 과거에 지은 죄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오늘날 우리들도 요셉의 형들처럼 살아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은 죄를 생각나게 합니다. 물론 이미 십자가의 보혈로 다 용서받았고, 하나님은 기억도 하지 않지만 생각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거에 나름 거룩하게 살았기 때문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생각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26을 보시기 바랍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특히 오늘 본문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어떻게 분이라고 했습니까?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로 연약합니까? 입만 열면 기도해야지 하고 말은 잘 하는데,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간구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아버지, 과거에 지은 죄가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약속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기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까요? 28절에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이렇게 도우시는 성령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즉 우리를 어디까지 인도하시를 원하고 계십니까? 2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가게 하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에베소서 5:18에 보면,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 충만이란 성령님에게 온전히 붙잡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들여 주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그러하면 예수님께서 맺으셨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과 절제입니다. 이러한 열매를 맺으시길 축원 드립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강단장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내어 주신 이유는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 보면, 성령님을 Helper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님께서 과거에도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다. 그리고 과거의 죄가 아니라 말씀을 생각나도록 돕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님으로 충만한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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