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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열두 제자 이야기 4, 야고보
2020-06-28 13:50:30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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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8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열두 제자 이야기, 4”

(마가복음 1:16-19)

 

 

할렐루야! 잠시 후에 우리는 올해 첫 번째 성찬식이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떡과 잔을 받기 전에, 먼저 열두 제자 이야기, 야고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갈릴리의 어부 출신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에 보면, 야고보와 그의 동생이었던 요한은 예외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신 다음에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데, 누구를 버렸다고 했습니까?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세베대는 단순한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품꾼들을 고용해서 고기잡이를 할 정도로 큰 부자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세베대와 그의 집안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에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체포되어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셨을 때에 다른 복음서에는 베드로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베드로와 함께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대제사장의 집에 베드로가 들어갈 수 있도록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 제자가 바로 야고보의 동생이었던 요한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은 굉장한 신분이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은 로마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을 야고보와 요한이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버지인 세베대의 경제력과 영향력이 엄청났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막강한 배경을 가진 야고보와 요한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도 막강한 경제력과 영향력을 가진 아버지 세베대를 통하여 이룰 수 있는 야망도 대단하였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더 큰 야망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아빠 찬스보다도 예수님 찬스가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라가면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야망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이루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을에서 예수님의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어떻게 말하였습니까? ‘예수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저 인간들을 불고 다 태워버릴까요?’라고 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아너게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는데 정말 별명에 어울리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예수님을 신뢰한 것입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예수님을 따르면 따를수록 신이 났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귀신을 쫒아내시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 최강의 군대인 로마군대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물리칠 수 있으시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야고보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거절하지 말고 들어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원하였던 것은 무엇입니까?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놀라운 능력과 권세로 로마 군대를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그 나라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꿈이요 야망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야망에 대한 그들의 집념은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리를 요구한 사람은 야고보와 요한이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였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야고보와 요한이 가지고 있던 야망은 단순히 두 사람의 야망이 아니라 집안 전체가 추구하는 야망이었습니다.

 

뿐만 예수님께서 야고보에게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는냐고 물으셨을 때에 어떻게 대답하였습니까? 할 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어떤 희생이나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야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로마군대를 물리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로마군대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야고보의 야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 못지않게 깊은 절망과 슬픔 속에서 힘없이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다시는 성경에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사도행전 12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초대교회 당시에 헤롯은 항상 유대인의 반란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너무나 싫어하는 기독교인들 박해함으로 유대인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희생자로 누구를 칼로 죽였다고 했습니까?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야고보가 다시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야고보는 열두 사도 가운데 첫 번째 순교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가 이렇게 변화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가의 다락방에서 먹었던 유월절 만찬 때문이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이라고 불리는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주셨던 그 떡과 잔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떡은 에베소서 2:1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찢기신 주님의 몸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잔은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둘째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망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모든 죄인은 영원토록 지옥형벌을 받으면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이 둘째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이러한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순교의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면, 성찬의 은혜를 모르면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변화가 없습니다.

 

<결론>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잠시 후에 우리는 떡과 잔을 받게 됩니다. 이 떡과 잔을 통하여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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