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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절망의 은혜.2
2020-09-13 13:32:52
동산
조회수   118

200200913 대구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절망의 은혜. 2”

(창세기 32: 24-32)

 

 

할렐루야! 지난 주일부터 저는 절망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태릉선수촌에서 열심히 훈련을 하는 국가대표들의 운동복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의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는 뜻입니다. 즉 힘든 훈련이 없으면 금메달의 영광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고난을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고난이나 고생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은 언제나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을 먹는 것처럼 달콤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는 달콤한 영광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야만 마침내 영광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농부들이 가을에 잘 익은 사과 하나를 얻기 위하여 어떻게 합니까? 빈둥빈둥 놀지 않습니다. 봄부터 추수때 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달콤한 복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건강의 복, 물질의 복, 만사형통의 복이 쏟아지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다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고난의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실까요? 그것은 광야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가 있고, 절망을 통하여 주시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71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실제로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을 나오는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로 인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과 모세, 심지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오늘 우리에게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을 통하여서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야곱에게는 한 가지 탁월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요, 야곱에게는 궁지에서 벗어나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궁지에 몰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포자기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여러 차례 궁지에 몰렸지만 그때마다 기가 막힌 재주로 빠져 나갔습니다. 먼저 그는 형 에서가 가지고 있는 장자권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팔자타령이나 하면서 포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형의 배고픔을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인 이삭이 죽기 전에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했을 때에도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아버지를 속이고 대신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그는 외삼촌의 집으로 멀리 도망을 함으로 궁지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외삼촌의 집에서도 분위기가 험악해 지자 가족들과 짐승 떼를 거느리고 야반주도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지금까지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기가 막힌 재주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창세기 32:7에 보면,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형 에서가 동생을 죽이기 위하여 400명의 군인을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었던 야곱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마지막 히든카드를 꺼냈습니다. 야곱이 꺼낸 마지막 히든카드는 바로 뇌물작전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불법적으로 문제를 가장 확실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뇌물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물질 앞에 장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 시대에는 선지자들은 입에 무엇을 채워주는 사람에게는 평강을 외치면서 축복을 하지만, 아무것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외치면서 저주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뇌물의 힘을 야곱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3절 이하에 보면,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준비하였는데요,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두 마리 준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백 마리의 각종 짐승들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여러 차례에 나누어서 에서 앞으로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해졌습니다. 우리가 볼 때 절망의 한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야곱이 얼마나 초라하고 불쌍한 모습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야곱이 자신의 힘과 지혜만 믿고 교만하게 살았지만, 비로소 절망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는 것을 비참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잘 나가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에 출애굽의 사명을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80세의 나이에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을 그 때에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제대로 발견한 사람은 어떻게 변화됩니까? 하나님께 매어 달립니다. 이전까지는 폼으로 하나님을 느슨하게 붙들었던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발견하면 꽉 매어 달립니다.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한 야곱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야곱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씨름을 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씨름이란 레슬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호세아서 12장에 보면, 야곱이 했던 레슬링은 온 힘으로 다하여 하나님께 매어달려 기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기도는 한두 시간 만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날이 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심지어 25절에 보면 허벅지 관절을 치셨지만 그래도 놓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야곱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원래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뒤꿈치를 잡다, 속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힘으로 하나님을 이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간절하게 매어 달리는 야곱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야곱의 인생에 있어서 이 사건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의 힘을 의지하고 살던 인생에서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인생으로 바뀐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에게 있어서 얍복강은 단순히 기도응답을 받고서 또 다시 궁지에서 벗어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야곱의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절망의 자리, 막다른 골목으로 이끄는 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때도 있지만,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야곱처럼 절망의 자리 한 가운데 서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축복의 자리에 세우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혹시 절망의 자리 한 가운데 홀로 서 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손이 우리를 낮추시고, 마침내 우리를 축복의 자리에 세워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절망의 자리에서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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